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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SUIIN 2008. 8. 16. 19:25
고령화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것은 오래전이다. UN은 지난 1982년 ‘고령화에 대한 세계 회의’를 개최하면서 고령화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인구 고령화의 이유는 평균 수명의 연장과 저출산,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고령화의 속도 또한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지난 2000년 고령 인구(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7%를 넘으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19년에는 ‘고령 사회’(고령 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하고, 7년 뒤인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고령 인구 비율 20% 이상)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고령 사회’로의 진입은 지금부터 10년 뒤, 평균 수명은 100세까지 내다본다. 과연 10년이란 시간은 ‘긴 노후’를 준비하기에 적당한 시간일까.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이들의 ‘길고 긴 노후’가 걱정되는 이유….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오래 사니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지나친 낙관주의다. 평균적인 정년퇴직을 50세라 하면, 나머지 50년이 노후 생활이다. 인생 전반전과 같은 비율의 인생 후반전이 기다리지만, 이미 당신은 지치고 에너지가 고갈됐을지 모른다. 인생 후반전의 50년은 당신이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 정년이 빨라진 것은 고령화 시대를 더욱 위기로 몰고 있다. 삼팔선(38세에도 명예 퇴직한다는 뜻), 사오정(45세는 정년퇴직을 준비할 나이), 오륙도(56세가 되도록 퇴직하지 않으면 도둑놈)란 말이 유행어가 된 지 오래다. 경제력과 일거리를 만들어 두지 못한 이들에게 ‘긴 노후’는 악몽이다. 당신은 ‘긴 노후’를 맞이할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상태인가. 고령화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 의지 및 계획은 철저하지 못하다. 자식에게 손을 벌리기엔 마음이 편치 않다. 고령화 사회의 해법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가능한 오랫동안 현역에 머물면서 70대를 40~50대처럼 살아야 한다.

‘인생 이모작’은 단순히 두 개의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현역’으로 살 수 있는 꾸준한 자가 생산 능력을 키우라는 게 핵심이다.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의 저자인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적당히 하는 이모작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하라”면서 “두 인생 체제에서 기본적으로 은퇴는 없다. 두 번째 인생은 엉거주춤 인생 전반전에 걸쳐 사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마흔 청년을 위한 희망설계 프로젝트』의 저자 오영훈씨(라이프커리어 전략연구소 소장)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가는 먹고 살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경고하면서 “당신의 유통 기한을 무제한으로 늘리는 방법을 하루 빨리 찾으라”고 조언했다. 100세 클럽 창립자이자 장수 연구 전문가 이준남 원장은 『당신은 인생 후반기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라는 7권의 방대한 책에서 ‘심심한 사람, 창조성이 없는 사람, 배우지 않는 사람이 바로 늙은이’라고 정의했다. 인생 이모작의 힌트가 거기 있다. 심심하지 않고, 창조적이며, 늘 배우려는 시도를 하라.

인생 이모작을 취재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균 100세 시대’를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 막연하게 다가올 미래로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됐다. 당장 다가올 몇 년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긴 노후’까지 준비할 겨를은 없어 보였다. 어쩌면 미리 100세 노인의 자조적인 푸념을 들은 건지도 모른다. “계획 없이 살다가, 나이 마흔에 일자리를 잃고, 난 그렇게 죽지 못해 살았다우”라는. 반면, 철저한 준비 속에 당당한 노후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키워 영원한 현역을 꿈꾸고 있었다. 중학교 교사 → PD → 교수 → 방송 경영인이 된 50대 주철환은 인생 다모작의 증인이다. 70대 박종학씨는 말총머리 스타일의 환경운동연합 사진가로 맹활약 중이다. 그는 일거리와 ‘사회 기여’를 동시에 도모하고 있다. 또한 60대 교사 부부는 펜션 운영을 통해 젊은 손님과 소통 중이고, 중년의 두 여성은 케이크 디자이너와 라이프 코치로 은퇴 없는 영역을 구축했다. 서른 즈음, 축구 선수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젊은 이모작’도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영원한 현역’을 실천 중이다.

교사 한종선(60·서울 세화여고)·이혜종씨(56) 부부는 강원도 춘천 남이섬 인근에 유럽풍의 펜션을 마련했다. 전원생활과 노후 보장을 겸한 곳이다. 텃밭과 정원을 포함한 대지 규모는 약 924㎡(280여 평). 펜션은 지난 2005년 지어졌다. 정년퇴직을 2년 앞둔 한씨 부부는 매주 금요일 방과 후에 이곳으로 향한다. 주말마다 펜션을 관리하는 게 행복한 일이 됐다. 정년퇴직 후에는 펜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풍경’이란 펜션 이름은 아내가 지었다. 아침 남이섬의 물안개, 오후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저녁 무렵의 노을이 근사했다. 그 하루의 풍경이 펜션 이름으로 정해졌다. 부부가 전원생활을 하기로 정한 것은 30대부터. 그 이력이 재미있다. 남편은 서울 토박이 생활 5대째. 시골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경기도 평택 출신의 ‘시골 출신 아내’를 맞이한 뒤 변화가 시작됐다.

“아이들 어렸을 때 시골 처가에 자주 들렀고, 자연을 접하며 살았죠. 감성 면에서 도시의 놀이터와는 많이 다르잖아요. 시골집에 모이면 친척들과의 교류도 끈끈해져요. 손주들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부부는 시간이 나면 전원생활 부지를 물색했고, 그게 부부 동반 여행 겸 노후 계획의 출발점이 됐다. 마흔 중반 무렵 경기도 파주에 약 495㎡(150여 평) 정도의 땅을 매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 부지는 남이섬. 그렇게 변경된 이유가 있다. “귀농에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교 동창이 남이섬에 펜션 단지를 조성했죠. 전원생활을 하려던 게 펜션으로 변신했어요. 노후 보험 하나를 들었다고 할까요. 친구와 함께 하면 도움을 받고 신날 것 같더라고요.”

긴 노후를 보낼 집이니, 집 짓는 데서부터 부부의 (특히 아내의) ‘혁혁한 노고’가 시작됐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짓고 싶었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내가 많고, 그래서 여자 중심의 집이 필요한 거예요. 직접 설계를 해보고, 모형을 만들어 봤죠. 가능하면 목조로 짓고, 특히 예쁜 지붕을 얹고 싶었어요.” 부부에게 펜션은 이런 의미를 갖는 듯했다. 젊은 시절부터 가슴 한편에 묻어둔 조각을 꺼내 맞추듯, 새로운 인생 지도를 그려가는 일과 닮았다. 펜션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부부는 신나게 그려냈다. 부부는 “(펜션이) 지루할 수 있는 노년에 즐거운 ‘꺼리’를 탄생시켰다”며 흐뭇해 한다.

펜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달리 해석하면, 펜션은 마냥 낭만적인 게 아니고, 노동은 수고롭다. 남편의 오른손 중지는 무거운 돌을 나르다 골절이 됐고, 아내의 팔꿈치는 마당을 가꾸느라 가끔 쑤신다. “아파트에만 살아서 집 관리하는 걸 아나요. 지난겨울엔 보일러가 고장 나서, 올봄인가는 지하수 펌프가 말썽을 부려 고생이었죠. 그래도 삶의 즐거움은 배우는 일 아녜요. 요즘 웬만한 건 직접 응급 처치할 정도는 됐어요.”

은퇴 이후 인생 이모작이 다시 씨를 뿌리는 것이라면, 부부는 텃밭을 가꾸는 ‘소소한 귀농’을 실현 중이다. “3년여 마당을 꾸미고 텃밭 가꾸는 일을 했더니 허리 사이즈가 줄었어요(웃음). 농사는 온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 건강에 도움이 돼요. 남편이 당뇨 증세가 있었는데, 방학 때 머물면서 건강해진 건 신기한 일이죠. 몸과 마음이 모두 참 단순해져요.”

사실 펜션의 수입은 크지 않다. 관리비, 유지비를 제외하면 용돈이 남을까, 말까 정도. 부부는 정년퇴직 후 교사 연금이 뒷받침된 게 아니면 편안한 운영은 힘들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러나 부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노년의 큰 혜택을 얻은 듯했다.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부부는 펜션 관리라는 공동의 일을 찾았고, 일을 나눠 하면서 서로에게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손님으로 온 젊은 세대와의 교류, 자녀 및 손자 손녀와의 끈끈한 모임 등 ‘소통’이 핵심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나이든다는 것의 외로움은 드물다.

“우리 나이에 젊은이들 대화에 끼어들기 쉽나요. 남편이 교사 생활을 해서 젊은이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젊은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니까, 남편 적성에도 맞나봐요(웃음).” 풍경 펜션엔 다음 세대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특별한 생각이 담겼다. “요즘 일부 펜션이 상업적으로 변질돼 걱정이에요. 여기는 들어가는 입구가 하나예요. 통로가 하나니까, 들고 나며 정겨운 인사를 나누는 거죠. 여기서는 ‘단절’이란 단어가 어색해요.”

선생님에게 2년 뒤 정년퇴직의 소감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나온다. “사실 그런 게 있어요. 염치가 없다고 할까요. 교사가 되려는 젊은이는 많고 수요는 적어서 임용고시란 말이 돌잖아요. 내가 너무 욕심을 내서 젊은이들 자리를 차고앉아 있는 건 아닌가라는….” 30년 넘게 열성으로 제자를 가르쳐 왔을 선생님이 무슨 말인가. 아름다운 펜션 뒤에는 노년의 걱정이 숨어 있다. 인터뷰 말미, 누구에게나 인생이 낭만적이면 좋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긴 인생’에 대한 이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부부는 인생 이모작의 중요함을 다시금 강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이 일흔둘 박종학씨는 바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의 발걸음이다. 인터뷰 3일 전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대학생을 위한) ‘국토 환경 순례’ 사전 답사 중이었고, 인터뷰 당일에는 김포 매립지에서 열린 멸종 위기 도요새 살리기 대책 위원회에 참석했다. 도요새 이동국(호주, 일본, 중국 등)의 환경 운동 회원들과 유엔환경개발회의, 환경부 관련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씨는 “새가 없는 곳에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6월 중순,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사무실 근처 카페(더 소호)에서 박종학씨를 만났다. 기자와 대면하는 자리에서 그는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정보센터 기획의원. 손은 세월을 머금어 주름졌지만, 명함을 꺼내는 모습은 당당했다.

박씨는 희끗한 머리칼을 뒤로 묶은 말총머리 스타일로 부각된다. 바지는 젊은 감각파가 소화해내는 건빵 바지를 입었다. 젊은 스타일을 통해 “노병은 죽지 않는다”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말총머리는 그냥 멋내기가 아니다. 사연이 있다. “6년 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효순 사건 때 미국에 반대해 수염과 머리칼을 안 자른다는 선언을 했어요.” 박씨는 내년 1월 환경운동연합 자원봉사자로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는 “금 한 돈으로 만든 달과 산, 강을 판화화한 환경운동연합 배지를 공로패로 받는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공무원으로 33년을 보내고, 쉰 중반에 퇴직했던 박씨가 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된 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주들이 아토피가 있었죠. 할아버지 보고 자꾸 등을 긁어 달라더군요. 그게 다 환경 탓이란 생각이 들었죠.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군요. 1998년에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 전화 가입을 했어요. 환경운동연합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함께 사는 길』에서 사진 자원봉사자를 구하더군요. 그렇게 ‘당당한 노후’가 시작된 거죠.”

사진은 공무원 시절 동호회 활동을 통해 배웠다. 자원봉사 초기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고, 일명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로 옮겨 탄 뒤, 현재는 전문가 급 DSLR을 사용한다. 늦은 나이에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게 어렵지 않았냐고 물으니,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작동 원리는 같다. 공무원 시절부터 컴퓨터는 잘 다뤘다”고 했다. 지금껏 촬영한 환경 사진은 20만 컷을 넘어섰다. “카메라 구입 비용은 대략 1200만원 정도 들었어요. 철새 촬영에 사용되는 고가의 600mm 렌즈(일명 왕대포 렌즈)에 큰돈이 들었죠.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1년 동안 원룸 빌딩의 경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요.”

공무원 시절엔 몇 차례 터닝 포인트를 갈구했지만, ‘자식 농사는 마쳐야 된다’는 숙제를 안고 참았다. 막내가 대학 졸업을 하면서 그는 직장을 그만뒀다. 정년퇴직을 5년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친구들은 그에게 ‘돌았다’는 표현을 쓴다며 웃어넘겼다. 편하게 살 그 나이에 야간 경비 아르바이트를 자청하고, 근사한 저녁 모임 대신 촛불 집회에 나가니,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 “우리 나이면 대부분 ‘보수파’에 속하잖아요. 그러나 난 진보파에 속하는 거고(웃음). 친구들이 나보고 정말 행복하냐고 물어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난 정말 행복해요. 칠십 먹은 노인네의 환경 생각을 그렇게 주의 깊게 들어주는데, 얼마나 행복하냔 말예요.”

집에 있는 날보다 밖에 있는 날이 많다. 현장에 쫓아다니느라, 한창 일할 때보다 집을 더 비운다. 아내와의 동행은 슬슬 멀어져 간다. 아내 입장에서는 서운할 노릇 아닐까.
“아내는 대환영이에요. 이런 말을 해요. 당신 나이에 명함을 떳떳하게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구요. 자비를 들여 해외도 가끔 나갑니다. 베트남, 몽골 등 조류가 있는 곳을 탐방 가는 거죠. 여행 비용요? 자식이 넷인데, 할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사는 걸 아니까, 넷이 자발적으로 모아서 보태주죠. 조만간 러시아의 두루미 번식지를 둘러볼 계획입니다.”

철새 탐방을 떠올리면 가슴이 뛰고 발걸음이 가볍다. 나이 탓에 체력이 뒤처질까, 매일 아침 6km 정도 러닝머신을 뛴다. 또래에 비해 체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열정이 건넨 혜택이다. 날이 갈수록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평범한 노후였다면 벌써 싫증 났을 겁니다. 내가 예민한 편이기도 해서 노인정에 가거나 집에서 하릴없이 TV를 봤으면 집사람에게 괜한 잔소리만 늘어놨을지도 몰라요. 바쁘게 돌아다니고 집에 들어오면 집사람이 수고했다며 등을 두들겨 주네요(웃음).”

노인들에게는 이런 조언을 했다. 허송세월 대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으라고, 다리에 힘이 있을 때 움직이라고, 뇌를 자꾸 움직여야 치매에 안 걸린다고, 무엇보다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가슴에 따라 행동하라는 얘기들이다. 인터뷰 말미,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저녁 때 환경 회의가 있는데 늦었네요. 환경부에 전달할 시민단체 의견을 조율해야 하거든요.” 말총머리의 환경 지킴이는 저녁을 거른 채 토론에 열중하는 것으로 긴 하루를 정리했을 터였다.

연세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 최윤식 연구원(46)은 인생 이모작의 핵심이 ‘자신과의 면밀한 대화’를 통한 ‘자기 인식’이라고 말한다. “나의 장점은 무엇이고, 어떤 일에 희열을 느끼며 몰입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야 한다. 최씨는 서른 중반에 인생 후반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자아 인식’의 과정을 거쳤다. 한 회사의 직원 교육 부서에서 근무한 그는 인간관계 및 심리 행동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고 흥미를 느낀다는 판단을 내렸다.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일종의 자기 테스트를 시작했고, 인생을 걸 만하다는 판단이 생기자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데는 5년여가 걸렸다. 인생 이모작에 성공하기 위한 준비 기간은 ‘평균 5년’. 현재 연세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이자 ‘라이프 코치’로 활동 중이다. “지금은 (인생 이모작의)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그는 성공 노하우를 묻자 “내가 지닌 장점과 흥미를 알고 거기서 승부수를 찾았다”, “5년여 준비 기간 동안 평일과 휴일 구분 없이 매일 24시간을 달려왔다”고 답했다. 인생의 두 번째 승부수를 던지면서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는 얘기다. 앞으로 노후 30년은 연륜 있는 라이프 코치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고령화 사회다. 인생 이모작은 결국 ‘인생 설계’의 문제다. 예전에 일모작으로 노후가 가능했다면, 지금은 일모작 이후 최소 30년의 노후 세월이 기다린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결국 인생 이모작의 핵심은 꾸준히 자가 생산을 하면서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평균 45세 전후를 기점으로 설정하고, 늦어도 50세 전에는 준비해야 한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경우라면 50세 이후, 경쟁이 치열한 사기업이라면 40세 이후부터 빨리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인생 이모작은 한 사이클을 마치고 다른 사이클로 이동하는 과정으로, 안정에서 변화로 가는 시기다. 성공적인 인생 이모작을 위해 필요한 기간은 ‘평균 5년’이란 조사 결과가 있다.

지금 같은 이모작 시대엔 ‘평균치 인간’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평균 이상의 무기 하나를 준비해야 한다. 사람마다 잘하는 ‘장르’가 다르다. 운동 경기를 예로 들면,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있고, 농구에 재능 있는 선수가 있다. 내가 잘하는 종목은 뭐고, 어떤 종목으로 시합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기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경기를 펼쳐야 한다. 인생 이모작에 성공하려면 리스크가 가장 적은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 ‘평균 5년’의 준비 기간에는 자신과의 긴밀한 대화+열린 마음+혹독한 훈련에 매달려야 한다. 인생 이모작은 그 어느 순간도 성실해야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과 인생을 돌아보는 타자화(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가 필요하다. 그 다음은 ‘자기 인식’의 과정이다.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으며, 무슨 일을 할 때 열정이 생기고 몰입할 수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나이 마흔은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시점이다.

‘자기와의 대화’는 외적인 자극(언론, 주변을 통해 알려진 사례들)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외적인 자극을 받은 뒤에는 ‘내 경우라면?’ 등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메모나 일기 등을 통해 자신과 나눈 대화를 적는 과정은 좋은 효과가 있다. 사람들의 기본 심리로 자기 합리화와 미루기가 있다. “나 정도면 언제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자기 합리화라면, “(노후가) 발등에 떨어진 불도 아닌데…”라는 안일한 생각이 ‘미루기’다. 결국 ‘절실함’의 문제다. ‘자기와의 대화’는 “이걸 안 하면 앞으로 인생은 없다”는 두려움 속에서 나를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이다.

갱년기 증세를 예로 들자. 갱년기가 있다는 걸 인식한 사람과 “갱년기쯤이야”라고 무시하는 사람은 정작 갱년기가 찾아왔을 때 대응 결과가 다르다. 무시한 사람은 갱년기 증세가 오면 쉽게 무너진다. 인생 이모작도 마찬가지다. ‘인식’을 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잘 대응할 수 있다. 인생 이모작은 고령화 사회에서 ‘모두’ 준비해야 하지만, 특히 안정된 시스템(보호막)에 있었던 조직인에게 절실하다. 그들은 거센 바람을 맞으면 저항력, 인내력이 없어 쉽게 무너진다.

잘나갈 때 준비한 사람들은 성공 확률이 높다. 한창 뻗어 나가고 성장하고 있는 시기에 스스로의 삶에 꾸준한 ‘질문’을 던지고, 승부수를 던진 사람들이 성공했다. 반면 종착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거의 실패했다. 연료가 없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후반전을 달릴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꼭 그만둬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다니면서 준비하는 게 리스크 관리다. 인생 이모작은 배수의 진을 쳐도 성공 가능성을 가늠키 힘들다. “직장 그만두고 준비하면 잘 되겠지”란 막연한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착각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명함’을 보고 평가한다. 명함이 조직의 백그라운드를 알리는 것이라면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믿을 구석이 사라지는 셈이다, 명함이 있을 때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게 낫다.

이모작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할 사람은 배우자다. 배우자의 동의와 협조가 없으면 고난이다. 50대에 이모작을 준비한다고 치자. 50대는 생활수준, 자녀 교육비 등 씀씀이가 최고점인 시기다. 혼자 결정을 앞세워 달리기엔 위험이 너무 크다. 인생 이모작을 위한 배우자의 교감을 이끌어 내려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천천히 대화를 통해 알려주어야 한다. 갑자기 통보하면 충격과 반발이 크다. 자주 배우자에게 자신의 인생 정보를 알리는 긴밀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출처] http://fam.kbstar.com/quics?page=A012630&cc=a047639:a047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