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과거를 보기 위해 나귀를 타고 장안으로 가다가 문득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조용한 집, 함께 사는 이웃집도 적고(閑居少隣竝)
풀밭 사이의 오솔길이 가꾸지 않은 정원으로 들어간다(草徑入荒園)
새는 연못가에 있는 나무에서 잠이 들었고(鳥宿池邊樹)
중은 달빛이 비친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
다리를 지나가니 들판의 빛이 둘로 나누이는 듯하고(過橋分野色)
구름을 헤치고 걸어오니 돌이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移石動雲根)
나는 잠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暫去還來此)
함께 조용히 지내고자 했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幽期不負言)'
그런데 가도는 이 시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라는 구절에서 '문을 밀다(推·옮을 추, 밀 퇴)'라고 쓰고는 '두드리다(敲·두드릴 고)'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아니면 그대로 밀다로 쓰는 것이 좋을까" 하는 갈등이 생겼다. 두 개의 문자를 놓고 고민하면서 길을 가다가 마침 경윤(京尹)이었던 한유(韓愈)의 행차를 가로지르는 불경을 범했다. 가도가 불경할 의도가 아니라 '밀다'와 '두드리다'를 놓고 고민하던 중이라고 사연을 말하자 한유는 "민다는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다"고 의견을 말하면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기사(唐詩紀事)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 가며 다듬어 고치는 일'을 가리켜 퇴고라 하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아 고치는 교열(校閱), 교정지와 원고를 대조해 틀린 글이나 빠진 글자를 찾아 바로잡는 교정(校正), 맞춤법의 오류나 잘못 표현된 어구를 바로잡는 교정(校訂)에 비하여, 퇴고는 이미 글쓰기를 마친 상태에서 보다 적절하고 적확한 문자와 단어를 찾아 표현함으로써 아름답고 온전한 글을 쓰려는 노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대의 대문장가 소동파는 '적벽부'를 탈고한 뒤 자신을 찾아온 친구에게 이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글의 빼어난 기상과 아름답고 매끄러운 문장에 감탄하며 글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물었다. 소동파는 "지금 이 자리에서"라고 대답했는데 그가 앉았던 자리가 불룩하게 솟아 있어 들춰보니 퇴고한 원고 뭉치가 한 삼태기나 깔려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최고 문장가 투르게네프는 작품을 쓰면 일단 서랍에 넣어 두고 3개월에 한 번씩 고쳤다고 하고, 시인 안도현은 시 한 편에 40∼50번의 퇴고를 거친다고 한다.
요즘 철자가 틀렸을 뿐 아니라 맞춤법을 파괴하는 문자와 변형된 단어, 갖가지 이모티콘 등으로 만들어진 메시지를 받으면서 묘한 거부감을 넘어 불쾌함을 느끼는 건 세대차이일까.
예수 문장은 여인 생명도 살려
예수께서는 자신을 고발하려고 올무를 놓는 종교지도자들 앞에 목숨을 걸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한 줄의 글을 썼고,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쓰신 글은 간결하지만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죽음의 문턱에 이른 한 여인의 생명을 살리는 문장이었다(요 8:2∼11). 복음사가 누가는 사실에 대한 전언과 사료를 가지고도 '자세히 미루어 살핀 후'에 글을 썼다고 했다(눅 1:1∼4).
박순영 장충단교회 담임목사
출처]http://media.daum.net/editorial/all/newsview?newsid=2012111518280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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