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진실로 뜨거운 사람이었던가?
--안도현--
1980년대만 해도 한 겨울 담벼락 아랜 영락없이 하얀 연탄재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동네 아이들 모두 몰려 나와 연탄재 하나씩 눈 위에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고 그것도 지치면 편 갈라 눈싸움을 했었다. 또 술 취한 아저씨들이나 기운 넘치는 청년들의 분풀이 대상이기도 했다.
유난히 춥고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를 따뜻하게 녹여줬던 연탄은 지금은 어쩌면 지나간 그리움 그 자체다.
그리고, 연탄의 변신
지난 8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는 '제5회 경기도 재활용품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빈병, 깡통, 골판지 등 여러 가지 버려진 폐품이 실용적인 생활용품으로 재탄생됐는데 그 중 실용부문 일반대상을 받은 윤재일(46·안양)씨의 '연탄재 조명등'은 단연 돋보였다.
자신을 하얗게 불사르고 재가 돼 버려진 연탄재가 호텔 로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되고 화려한 조명등이 돼 있었다. 수명이 다한 연탄재에 새로운 삶을 부여한 작품의 주인을 찾았다.
"10년 전 길을 가다 공터 한 구석에 버려진 연탄재 무더기를 보고 모티브를 얻었어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줬을 연탄이 제 명을 다하고 쓸모없이 버려진 모습에 연민이 들면서 뭔가 만들어 보고픈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연탄재를 들고 와 가마에 넣고 구웠죠."
도예가인 윤 작가는 연탄재를 가마에 넣고 1천200도에서 20시간을 구웠다. 꺼내보니 모양이나 질감은 그대로 살아 있고 강도는 벽돌보다 단단한 변신 연탄재가 나왔다. 그냥도 구워보고 유약을 발라 구워보고 윤 씨는 연탄에게 별의별 짓을 다했다.
"웬만한 돌이나 벽돌보다 단단한 구워진 연탄재를 무엇에 쓸꼬~ 생각해보니 우선 건축자재나 장식품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연탄 사이사이 공기층이 있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 천연재료라 원적외선도 방출되고…. 하지만 단가가 세서 우선 작은 것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화분과 조명등이다. 화분은 연탄재 가운데를 적당히 구멍을 내 가마에서 구워낸다. 그리고 구멍 낸 가운데 흙을 채우고 화초를 심으면 이보다 더 좋은 화분이 없다. 보기에 상당한 운치가 있을뿐더러 통기성이 좋고 물을 항상 흡수하고 있어 일정한 습도를 유지해 식물에게 그만이다.
조명등은 구워낸 연탄재 한 가운데 전구 시설을 끼우고 그 위로 구멍 낸 공 모양의 도자기를 얹어 전기와 연결하면 은은한 자연불빛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조명등으로 재탄생한다. 조명등의 크기는 연탄을 몇 장 쌓느냐에 따라 틀려진다. 요즘 도시에선 연탄재 구경하기가 어렵다. 하다못해 시골에서도 기름보일러, 가스보일러를 쓰는 세상인데 연탄재는 어디서 구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연탄의 추억
"대형화원이나 고기구이집 같은 곳에서는 연탄을 사용해요. 그런 곳에 부탁해 놓고 일정한 날짜에 수거해오죠. 이렇게 가마 안에서 재탄생한 건축자재용 연탄재는 1장에 2만원선이고요, 화분은 3만원선, 조명등은 십만원선이에요."
이렇게 연탄재로 작품을 만든 지 8년째. 알음알음으로 마니아들이 생겼다.
"일반인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조명등이나 화분을 많이 구입해요. 카페나 식당 하시는 분들은 인테리어에 쓸 연탄조형물을 많이 사가죠. 연탄에 대한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대요. 야~ 이게 언제 적 연탄이야? 춥고 힘들던 옛날 생각나네. 그러면서 대화의 고리가 풀어진대요."
하긴. 추운 겨울 날 따뜻한 아랫목에 서로 누우려고 형제끼리 다투던 밤들, 밤새 연탄가스 마시고 어질어질할 때 엄마가 먹여주던 시원한 동치미 국물, 연탄불 꺼뜨렸다고 외출에서 돌아온 부모님께 혼나던 기억, 엄마 몰래 연탄불에 달고나(?) 해 먹다 국자 태워먹고 벌서던 추억, 생각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연탄은 작은 제 한 몸으로 방을 덥히고 음식을 데우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줬지만 생을 다하면 천덕꾸러기가 됐다. 기껏 담벼락에 방치되다 눈길 위에 산산이 부서져 뿌려지거나 화난 사람들의 발길질을 감수해야 했다. 그 연탄재에 생명을 불어 넣은 윤 작가는 작은 희망이 있다.
"연탄재로 멋진 건물을 짓는 게 꿈이에요. 구운 연탄재는 강도가 세서 건축재료로 벽돌보다 나아요. 게다가 통풍 잘 되니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 또 연탄재로 지어놓으면 얼마나 멋스러운지 몰라요."
찬바람 불면 따뜻한 것이 그리워진다. 따뜻함은 추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그래서 우린 연탄난로가 있고 70년대 책걸상이 있는 카페에서 마음 편안해하는 것일까. 버려지고 잊혀져 가는 연탄재를 소재로 자신만의 철학을 담는 윤 작가의 연탄재 작품들. 감각적이고도 실용적인 연탄의 무한변신을 지켜봐도 좋겠다. 오는 10월 22일부터 일주일간 윤 작가의 '연탄 조형전'이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이 가을, 하찮기만 했던 연탄재의 무한한 변신을 보며 지난 추억에 한번 젖어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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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제휴사 / 피클뉴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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