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이 없음'에 대하여 -論無話可說

십 년 전에 시를 쓴 적이 있다.

그 뒤 시를 쓰지 않고 산문을 줄곧 써왔다. 중년에 접어든 이후 산문도 별로 써지질 않는다. 지금은 산문보다도 더욱 '불어터진' 할 말이 없음 단계이다.

많은 사람들은 할 말이 있어도 말이 나오지 않아서고통스러워한다. 혹은 할 말은 있는데 할 곳이 없어서 고통스러워한다. 그들의 고통은 그래도 말속에있겠지만,

그러나 나의 '할 말이 없음'은 그 고통이 말 밖에 있다.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마른 나뭇잎이요, 썩은 종이 같다. 이 위대한 시대에.

어떤 글에선가 말한 바 있지만, 내 '추억의 길목'은 '숫돌처럼 반듯하고' '화살처럼 곧다'고 할 수 있다.나는 지금까지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설령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화려했을 청소년 시절에도 그러했다. 나의 빛깔은 영원히 회색이다. 내 직업은 세 군데 훈장질이 고작이고, 내 친구는 영원히 정해진 그 몇 명, 나의 여인은 영원히 그녀 하나, 어떤 사람은 생활이 너무도 풍부하고, 너무도 복잡하여 자신을 잊기도 하고 자신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나는 항상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

나란 인간이 얼마나 단순한 사람인지를...

그런데 어떻게 시나 글을 써낼 수 있었을까?

비록 다 헛소리겠지만. 그건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십 년 전은 바로 5.4운동 시절이었다. 모두들 생기발랄한 아침 기운이 젊은 학생이었던 나를 몰아부쳤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 자언이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단지 윤곽일 따름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대단한 역경을 겪은 것도 아니어서 심사숙고했다거나 체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윤곽은 결국 윤곽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운곽을 제외하면 그저 남는 것이라곤 싸구려, 새 병에 오랜 술을 담은 한낱 센티맨틀일 따름이다. 그 당시 깨알 같고 콩 같은 일에도진지하게 글을 써내곤 했는데 지금 다시 보면 그저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선구자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 자신의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간단하다. 말한다고 해 봐야 그게 그거여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질려버리고 만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다. 나 같은 사람들은 사실 할 만한 말이 없다.동서고금의선각자들이 했던말이나 지금 청소년들이 하려고 하는 말을 되풀이할 따름이다.

진정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다.왜냐하면 진정한 생활을 하면서그 생활을 음미하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간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젊었을 적엔 나름대로 정열이 있었기에 이런 점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중년이 되면 아무리 못났어도 상황판단을 객관적으로 하고 달관적으로 되는데 이건 바람직한 일이다. 이때는 눈에 안개가 걷히고 머리 위에는 구름이 사라지면서 드러나는 것은 자신의 길일 따름이다.

그는 경험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끝이 없지만 그러나 착실하게 한 발 한 발 길을 밝아갈 것이다. 그는 소년 시절의 그러한 정감 넘치던 일들을 회고하면 일종의 유쾌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즐겁게 지난 일들을 분석하는데 그건 소년 시절의 일만이 아니다. 멀리 떨어져서 더듬어려 하지 않고 껍질을 벗겨 세세하게 보려고 한다. 물론 껍질을 벗기면 약동하는 생명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것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냉정한 가운데 그가 필요한 것이 있음을 안다. 이럴 즈음 그가 우연히 말을 한다면 결코 감상적이거나 인상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그대에게 어떻게 그의 길을 걸었는지 알려 주려 할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껍집을 벗겨내고 남은 것은 무엇인지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겁이 너무 많아진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많이 듣게 되면서 점차 남이 이미 했던 말은 하지 않게 되고 남이 잘한 말도 되풀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결국 종종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된다. 특히 나같이 보통 사람은 말이다. 그러나 침묵 또한 보통 사람에게견디기 힘든 것이다. 나의 고통을 말 밖에 있다는 점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이 여전히 소년 시절의가락을 탄다면 그 가락이 좋든 나쁘든 안될 것도 없겠지만 그저 '티낸다'는 느낌을 주게 될 것이다. 그가 열심히 공을 들여 정열적이거나 눈물이 핑도는 이야기를 썼다고 했을 때 그게 자신의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보기에는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마치 나이 든 아주머니나 아가씨가 화장도 안한 채 사람들이 들끓는 광장에 나가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정말 못 봐 줄 일이다.

우리 나이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런 말도 다 쓰잘 데 없는 소리겠다.

이 나이에 필요한 것은 '대변인'이다. 근본적으로 자기 이야기는 없고 모든 말을 대변하는 '대변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 같은 인간은 그래도 과거에 경망스러웠던 죄과를 경감시킬 수 있을 것 같고,그러다 보니 지금은 더더욱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대씨가 번역한 '유물론적 문학관'을 보았더니 프랑스 속담에 '할 말이 없음'은 '모든 게 다 좋다'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맙소사, 이건 얼마나 속상한 구절인가, 나에게도 그리고 이 시대에도.

<1931년 3월>

아버지의 뒷모습(태학산문선 401)

주쯔칭[(주자청), 1898~1948], 아버지의 뒷모습, 태학사,200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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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 수록 '할 말이 없음'이 아니라'경우에 합당한 말'에 능숙해 지고 싶다.

츨처] http://blog.daum.net/pureunkim/7176377

Posted by SUI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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