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산(鄭子産)은 춘추시대 정나라의 재상이었다. 순시를 다녀오는 길에 사람들이 옷을 벗고 물이 불어난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문득 자기 수레를 내어 그들을 태워 강을 건네주었다. 백성의 고달픈 삶에손을 내밀 줄 아는 정치가였던 것이다.

 공자는 그를 "은혜로운 사람"으로 평가했다.
맹자는 공자를 사숙한 사람이다. 이런 맹자가 정자산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를 내렸다. "은혜로웠지만, 정치를 몰랐다"는 것이다. 은혜로웠다는 공자의 호평을 감안하면서도, '정치를 몰랐다'며 자기 뜻을 밀어붙이는 데 이 대목의 묘미가 있다.

 맹자의 비평을 들어보자. "물 건너는 백성을 수레로 다 건네주려면 종일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리를 놓으면, 누구나 강을 건널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정자산을 두고 '사람을 아낄 줄은 알았으나, 정치를 할 줄은 몰랐다'고 평한 것이다.

 정치를 다리 놓기에 비유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정치가에게는 은혜만이 아니라 지혜도 요구된다는 뜻이다. 다리가 공학적인 제작물이듯, 지혜란 법과 제도로 표현되는 메커니즘이다. 즉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제대로 펴려면 다리라는 정치적 세계를 알아야 하고, 또 그것을 만들어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유세기간에 눈으로 보고 손을 잡았던 힘든 사람들을 다독거리는 것이 끝이 아니라, 제도와 생활안정 대책을 법률로 제정하고 개선하는, 작업이 다리를 놓는 일이다. 또 다리는 이쪽과 저쪽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상징한다. 가진 자와 없는 자, 높은 곳과 낮은 곳, 왼쪽과 오른쪽, 노인과 젊은이, 그리고 여성과 남성을 잇는 다리 만들기가 정치라는 의미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세대 간, 소득 간, 지역 간의 분열이다. 격앙된 사람들의 마음을 풀고 돌려 서로 연결하는 다리 놓기야말로 정치의 큰일인 터다.

 동시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점도 있지 싶다. 다리를 처음 만들어놓을 때는 다들 환호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 있던 다리인 양 심드렁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점을. 나아가 내가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또는 내가 베풀어 주었다는 시혜의 눈으로 다리를 보는 순간, 그것은 너와 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아니라 도리어 단절시키는 칼날이 되고 만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다리 놓기는 발상의 전환을 상징한다.

 물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수레를 내주기는 그나마 쉽다. 아픈 사람 다독거리기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허공에 다리를 놓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다리 놓기로서의 정치란 상상력이요, 창의성의 세계다. 여기서 정치는 과학이 아니라 문학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누구나 보지만 그냥 지나치는 숨은 고통을 낯설게 발견하기, 아파서 소리만 낼 뿐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포착하고 드러내어 개념화하는 일이 정치의 몫이다. 곧 허공에 길을 발견하고 다리로 드러내는 것이 정치다. 그렇다면 정치가에겐 시인의 눈이 필요하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눈, 심드렁하게 일상적인 일로 봐 넘기는 것들 속에 숨어있는 비상한 조짐을 파악하는 눈, 이것이 정치가의 눈이다.

이미 문제로 드러난 것을 문제로 삼아 해결하는 것은 경영관리나 행정기술 영역에 속한다. 반면 정치란 난데없이 터져나오는 사건,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발생하는 사고에 대처하는 기술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이 정치를 '오페라 공연 중에 갑자기 터져나오는 총소리'에 비유한 것이나,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운명과 대결하는 것'으로 표현한 까닭이.

그러나 막상 다리를 만드는 것은 정치가의 본업이 아니다. 실제 다리는 물 건너는 고통을 직접 겪는 백성들 손(세금)으로 만들기 마련이다. 정치가의 임무는 몸소 겪으면서도 표현 못하는 고통을 말(정책)로 드러내어 다리 놓기를 제안하고 그들의 공감을 얻고 의사를 결집해 다리를 놓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 모두의 다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제야 다리는 누구의 사유물일 수 없고, 더불어 만든 공유물이 된다.

 그러니 '내가 홀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정치가가 지녀야 할 최우선의 마음가짐이다. 공동체의 다리는 나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소유가 아닌 것이다. 앞서 누군가가, 가는 곳마다 보는 일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처하다가 끝내 제 전공인 토목공사조차 망쳐버린 것은 가까운 반면교사다.
 정치가는 숨은 문제를 드러내어 함께 고민하고 합의하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다시금 대통령의 영어 표현인 프레지던트의 본래 뜻이 사회자, 의사 조정자라는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숨어서 혼자 고뇌하는 것이 정치인 양, 보안 철저가 무슨 자랑인 양 여기더니, 홀로 고민해 내놓은 총리지명자가 자진 사퇴하는 모습을 보니 염려스러워 해보는 소리다.

<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
출처 http://media.daum.net/editorial/all/newsview?newsid=20130131215014189 

Posted by SUI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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